독일 정치권이 사실상 징병제 부활을 향한 첫 단계를 밟았다. 13일(현지시간) 보수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CDU·CSU)과 집권 사회민주당(SPD)은 2027년부터 매년 만 18세가 되는 남성 약 30만 명 전원을 군 복무를 전제로 한 신체검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에 정치적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새 제도는 기본적으로 자원입대를 전제로 한다. 2026년부터 해당 연령대 남성에게 군 복무 의향과 건강 상태, 교육 수준 등을 묻는 설문지를 보내고, 2027년부터는 전원에 대한 대면 신체검사를 실시한다. 여성은 설문과 지원이 모두 자율이다. 당장은 지원자 가운데 선발해 복무시키는 구조이지만, 필요 인원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한 인원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별해 징집하는 장치도 법안에 포함됐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중단한 뒤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병력 부족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독일 연방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목표를 맞추기 위해 현재 약 18만 명 수준인 군 병력을 2030년대 초 26만 명 선까지 늘리고, 예비군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이번 합의는 유사시 징집이 가능한 인원 풀과 의무기록 데이터베이스를 미리 구축해 두겠다는 구상과 맞닿아 있다.

다만 세부 방식에서는 논쟁이 계속된다. CDU·CSU는 지원자가 부족할 경우 일정 기준을 충족한 대상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징집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반면, SPD는 신체 조건과 전공·기술 등을 고려해 선별 복무를 확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방부는 “우선은 자발적 복무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만일의 경우에만 의무 복무를 발동하는 단계적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인권단체와 청년단체는 “사실상 징병제 재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남성만 의무 대상에 포함한 점, 양심적 병역거부·대체복무 제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찬성 측은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안보 공약 불확실성 속에서, 독일이 유럽 안보에서 더 큰 책임을 지려면 군 복무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냉전 종식 이후 축소된 병력과 장비를 단기간에 보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시 징집이 가능한 제도적 틀을 다시 갖춰야 한다는 논리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독일 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계속 다뤄질 전망이다.

  • 의무 대상의 남성 한정 여부와 여성 자원 확대 등 성평등 관점 반영
  •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범위와 사회복무·민간 대체복무 제도 정비
  • 징병 가능성을 전제로 한 인권·프라이버시 보호 장치와 데이터 관리 기준 마련

이번 합의는 법안 형태로 연방하원과 상원 심의를 거쳐야 한다. 실제 의무 복무 발동 여부와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독일이 새 군 복무 모델을 통해 안보 위기와 시민의 기본권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결과를 지켜볼 사안으로 남아 있다.

한 줄 요약: 독일이 2027년부터 매년 18세 남성 전원을 징병검사 대상에 올리는 조건부 징병제에 합의하면서, 안보 강화와 기본권·성평등 논쟁이 동시에 본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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