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8 · 서울 취재 | 김민서 기자

중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를 둘러싼 거친 말싸움을 이어가는 사이, 한국 안팎에서는 외교·안보 방향을 국내 정치 계산에만 맡겨 둔 채 버텨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거세다. 주변 강대국이 군사와 경제 구도를 흔들 때 한국의 진로를 일부 정치인의 메시지와 정파별 유불리 판단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일본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X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한눈에 보는 핵심
  •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자, 중국 외교관이 “더러운 목을 베겠다”는 표현을 쓰며 중·일 갈등이 급격히 고조됐다.
  • 한국은 대중·대일 교역 의존도가 높고 동맹과 안보 협력도 확대하는 상황이라, 외교·안보 방향을 국내 정쟁의 연장선으로만 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초당적 외교 전략과 시민 참여 통로를 제도화해, 외교 정책을 소수 정치인의 메시지가 아니라 국민과 기관이 함께 설계하는 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7일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중국의 대만 무력 행동을 가정한 질문에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답했다. 2015년 제정된 안보법제는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 국가가 공격을 받아 국민 생명과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면 자위대 파병을 허용한다. 한·중·일·미가 얽힌 대만해협에 일본의 군사 개입 가능성이 공식 발언으로 언급된 만큼,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도 이에 맞춰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이런 발언이 반복되면 동북아 전체의 군사 긴장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 정부와 국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위기별 대응 원칙을 법에 명시해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에 맞서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 쉐젠은 8·9일 자신의 X 계정에 글을 연달아 올려 다카이치 총리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는 일본의 일부 머리 나쁜 정치인이 선택하려는 죽음의 길”이라는 문장을 남겼고, 또 다른 글에서는 살해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 언론이 인용한 그의 글 중 하나는 “멋대로 쳐들어온 그 더러운 목을 벨 수 밖에 없다. 각오는 되어 있는가”라는 내용이다.

일본 외무성은 외교관으로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하며 중국 측에 강하게 항의했고, 일본 야권에서는 추방 요구까지 나왔다. 외교관 개인의 SNS가 양국 관계의 긴장 수위를 높이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한국에서도 외교·안보 현안을 당파적 공격 수단으로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더 치열해진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서 외교 메시지를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내보낼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대외 의존도는 이런 갈등의 파급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표누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19.5%로 가장 높고, 미국 18.7%, 유럽연합 10.0%, 일본 4.3% 순이다. 한국무역협회 K-stat 자료에서도 중국과 일본, 대만, 홍콩이 모두 상위 교역 상대국으로 집계된다. 공급망과 관광, 금융이 동시에 얽힌 구조에서 외교 갈등이 장기화되면 기업과 가계가 받는 충격이 크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이에 따라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외교·안보 전략과 연동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법으로 규정하고, 중·일·대만해협 리스크를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이런 여론을 토대로 외교·안보 정책을 정할 때 여야가 최소한의 공동 원칙을 먼저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맹 강화와 중국·러시아와의 갈등 관리, 남북 관계 안정이라는 세 축에 대해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기본 방향을 정하고, 그 안에서 구체 정책을 조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발간한 ‘국회의 외교 관련 결의안 채택의 특징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2020년 이후 외교 결의안 상당수가 현안 발생 직후 정파별 메시지를 내는 데 집중해 장기 전략 논의와 연계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상임위원회 차원의 정책 토론, 외교 현안별 공청회, 외부 전문가와의 연속 간담회 확대를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외교를 정파별 공방의 연장선으로만 다루지 않고, 국회가 책임 있는 파트너로 기능하려면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실제로 작동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검토하는 해법
  • 여야가 참여하는 외교·안보 상설 협의체를 두고, 대만해협·한반도·남중국해 등 주요 위기별 대응 원칙을 문서로 정리한다.
  • 대통령·총리의 주요 외교 발언은 사전 검토 절차와 국회 보고를 거치도록 하고, 발언록과 배경 설명을 공개한다.
시민과 시장이 제시하는 과제
  • 선거 때마다 정당과 후보의 외교·안보 공약을 비교·검증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성화한다.
  • 기업과 금융기관이 자사 공급망과 투자 포트폴리오에 중·일 갈등 위험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오사카 중국 총영사의 과격한 언사와 다카이치 총리의 강경 발언은 동북아에서 강대국의 말 한마디가 곧 외교·안보 환경을 바꾸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런 파고 속에서 스스로의 진로를 지키려면, 외교를 일부 정치인의 발언과 정쟁에만 맡기는 관행을 넘어 시민과 정부, 국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대외 정책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유권자가 외교·안보 구상을 기준으로 정치인을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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