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면의 한 유흥주점에서 해병대 전우를 믿고 찾아간 30대 남성이 지난해 8월 새벽 술자리에 앉았다가 숨졌다는 소식은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현재까지 전해진 수사와 재판 흐름대로라면 그는 짧은 시간에 양주를 거칠게 마셨고, 몸이 무너진 뒤에도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전우라는 얼굴로 불러 놓고 사람이 망가질 때까지 억지로 술을 먹였다면, 그 자리는 술집이 아니라 사람을 집어삼키는 함정이다.

자료: 2026.4.9 동아일보는 지난해 8월 부산 유흥주점 사건 경위를 전했다. 2026.3.17 연합뉴스는 재판에서 검찰이 강제 음주와 방치 사망을 주장했다고 전했고, 피고인 측은 혐의를 다투고 있다고 보도했다. 병 수량은 기사마다 3병과 4병으로 엇갈려 현재 재판에서 더 가려질 여지가 있다.
이런 판을 보고도 남과 마시는 술이 더 낫다고 말하는 건 현실을 외면하는 소리다. 적어도 혼자 마시는 잔은 전우인 척 다가와 입을 벌리게 만든 뒤 술을 억지로 들이붓지 않는다. 한국의 밤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배신한다면, 차라리 혼술이 낫다는 결론은 냉소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감각이다.
  • 반가운 척 불러 놓고 속으로 계산부터 굴리는 얼굴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 거절하는 몸을 붙잡고 더 마시게 하는 순간, 접대는 끝나고 포식이 시작된다.
  • 쓰러진 뒤까지 길바닥에 내버리는 밤거리에서는 외로움보다 동석이 더 잔인하다.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는 물음 앞에서 돌아오는 답이 고작 술자리 인맥뿐이라면 이미 사회는 깊이 썩은 것이다. 사람 얼굴이 안전장치가 아니라 위험 신호로 읽히는 밤에는, 혼자 비우는 잔이 오히려 덜 추잡하다. 믿음이 장사 수단으로 찢겨 나간 자리에서 혼술은 낭만이 아니라 마지막 방어선이다.

전우를 미끼로 손님을 끌어들인 업주와 그런 밤의 관행을 오래 방치한 감시 체계는 이번 비극의 책임에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강제음주 정황을 끝까지 추적하고, 유흥업소의 방치 행위를 곧바로 처벌하며, 새벽 영업장의 구조 요청 은폐를 상시 점검하는 조치를 한꺼번에 시행해야 한다. 이걸 또 미루면 다음 새벽에도 누군가는 사람을 믿은 대가로 바닥에 버려지고, 남는 것은 술값이 아니라 처참한 분노와 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