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2025년 한 해 337만 명이 다녀가며 개관 이후 최대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대표 미술관이 관람객 기록을 새로 썼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관람객 숫자만을 성과의 최종 지표로 삼으면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지나치게 좁게 만든다.
관람객 기록은 성과의 출발이지만, 공공 미술관의 책임은 그보다 넓다.
이 기록은 시각 예술을 찾는 시민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대형 전시와 마케팅 중심 운영에 정책과 예산이 더 쏠리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제 평가는 얼마나 많이 입장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시민이 어떤 경험과 학습 기회를 얻었는가에 맞춰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과천·덕수궁·청주에 관을 두고 현대미술 전시와 교육, 소장품 보존을 맡는 국가기관이다. 이 기관은 설립 취지상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공공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방문객 기록 경신은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넓어졌다는 의미도 가진다.
문제는 정책과 예산 평가 구조다. 문화 행정과 기관 운영 평가는 여전히 연간 관람객 수, 대형 전시 유치 건수, SNS 지표 같은 숫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소수의 유명 작가와 화제성 전시에 자원이 집중되고, 지역·청소년·장애인 등 다양한 관객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이번 기록이 진정한 공공 성과로 받아들여지려면 다음과 같은 정보와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 연령·지역·소득 수준별 관람객 구성과 체류 시간, 재방문율, 교육 프로그램 참여율 같은 질적 지표 공개
- 관람객 급증에 맞춘 전시 공간·동선·안전 관리와 직원 노동 환경 개선 계획 제시
- 수도권 중심 관람 행태를 줄이기 위한 지역 미술관·독립공간과의 중장기 협력 전략 마련
공공 미술관의 목표는 입장 인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민이 어떤 작품과 얼마나 깊이 만났는지를 분명히 설명하는 데 있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스스로의 성과를 평가할 때 이 기준을 앞세워야 한다.
2025년 방문객 지표
총 337만 명
개관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기록 뒤에 남은 과제
질적 평가 지표 부재
지역·계층별 접근성 정보와 공정한 분배 전략이 공개되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미술관 관람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관람객 숫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록적 증가를 이뤘다면, 이 기관이 공공 문화 인프라 가운데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이 영향력은 자축의 근거가 아니라 공정한 접근성과 장기적인 예술 생태계를 설계할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산과 인력은 한정돼 있고, 모든 프로그램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기관은 무엇을 줄이고 어디에 더 투자할지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관람객 수를 유지하면서도 실험적 작가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시·교육을 꾸준히 제공한다면, 그 자체가 기록 경신보다 더 설득력 있는 공공성과 혁신의 증거가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록을 기념 행사로 소비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방문객 337만 명이라는 숫자를 근거로 공공 미술관의 성과 지표를 재설계하고, 질적 평가를 뒷받침할 독립적인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관람객 기록만으로 평가는 끝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시민 경험을 어떻게 읽어낼지가 다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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